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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스톤-캠벨운동대사전』 출판을 앞두고, (한국 참빛지 기고문)

                                  정남수 교수(그리스도대학교 신학부)

  1. 2014년도『스톤-캠벨운동대사전』(The Encylopedia of Stone-Campbell Movement, 2004) 우리말 출판을 앞두고 총괄편집인 중 한 사람으로서 대사전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소회를 나누고자 한다. 2004년 미국 에드만스(Eerdmans)사에 의해 출판된 『스톤-캠벨운동대사전』(ESCM)은 전 세계 스톤-캠벨(환원운동) 운동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주로 미국 내의 스톤-캠벨운동의 세 지류(支流)들인 ‘그리스도의 제자들’(Disciples of Christ),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의 학자, 교수, 선교사, 작가, 목회자 등 300여명이 무려 10년간의 노력을 통해서 약 3세기에 걸친 전 세계의 스톤-캠벨운동 관련 700여개 주제로 신약교회역사, 성서해석, 신학, 선교, 교육, 교회사역, 사회봉사, 인물, 사건, 논쟁을 집대성한 책이다. 책의 두께가 무려 작은 글자크기(font 8)로 양면(兩面) 인쇄로 854쪽에 달한다. 대체로 앞의 세 지류의 성서적, 신학적, 교회적 입장을 서로 공유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객관적 자료들에 기초하여 21세기 우리의 공통된 뿌리가 하나님의 세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탐색하면서 기술한 학술사전이다. 이 편찬 작업에 4명의 총괄편집인들의 노고는 지대했다: 다글라스 A. 포스터, 폴 M. 브로워스, 안토니 L. 두나번트, 그리고 D. 뉘엘 윌리엄스가 그들이다. 이 작업에 큰 후원기관이 둘이 있다: 내슈빌(TN)에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사학회’(DCHS)와 에빌린(TX)의 ‘에빌린기독대학교’(ACU)의 ‘환원연구소’다. 다글라스 A. 포스터 박사와 안토니 L. 두나번트 박사는 테네시 내슈빌 소재 벤더빌트대학교의 대학원 박사과정의 동창으로서 이 대사전 편집 작업을 처음부터 주도하였다. 안타깝게도 두나번트 박사는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형제들에게 이 무거운 짐을 남겨 놓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죽음에 직면하여 스톤-캠벨운동과 신학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나타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에 임박하여서도 그런 애정과 희망을 품게 했을까? 그분은 그리스도의 교회(신약교회) 운동이야말로 이 땅에 성서적 하나님 나라 건설의 선취(先取)로 인식하였다. 그의 이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본다.

  2. 우리말 『스톤-캠벨운동대사전』 출판은 4년 전부터 우리 학교법인과 그리스도대학교에 의해 기획되었다. 물론 나는 이 대사전 내용과 성격의 대략을 그 전부터 좀 알고 있었다. 조동호 교수는 자신의 ‘환원운동연구소’ 웹싸이트에서 이 대사전의 내용 상당부분 번역하여 소개해 오곤 하였다. 4명의 우리말 총괄편집인들이 이 작업에 함께 하였다: 정남수, 백종구(서기대), 김진회, 조동호(대전 한성신) 교수이다. 우리말 총괄편집인을 포함하여 유/무악기 교회의 약 20여명의 교수, 학자, 목회자 번역진이 이 일에 수고하였다. 번역 원고 분량은 글자크기(font 10)로 A4로 약 1,400쪽이다. 우리말 사전으로 출판되면 더 늘어날 것이다. 1차 교정은 12월 초에 끝났고, 용어통일과 2차 교정이 1월 중순 경에 끝난다. 3차 교정은 주로 신학적 주제들에 집중하여 총괄 편집인들이 하기로 했다. 3차 교정이 끝나면 전체 번역원고를 ‘대한기독교출판사’ 편집부에 넘기게 된다. 그 출판사와 위탁출판하기고 약정한 상태이다. 때문에 편집, 인쇄, 출판 부대비용을 ‘그리스도대학교’에서 대부분 지출하게 된다. 이 대사전 출판은 향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목회, 교육, 선교, 예배, 교회 운영과 한국의 스톤-캠벨운동 관련 고등교육기관(예, KCU나 SCU)의 신학교육, 선교, 목회, 학술연구에 크게 기여하리라 본다. 
신약교회운동을 펼치는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운동의 선구자들은 신약교회운동을 하나님 나라의 현시요 예시로 파악했다. 한 마디로 이 대사전에는 우리가 흔히 묻고 싶고 알고 싶고 논쟁해 오고 신앙으로 추구해 왔던 주제와 우리의 믿음의 선구자들이 걸었던 역사가 객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원서 총괄 편집인들은 이 대사전을 가리켜 “우리의 신앙 공동체의 가족 앨범”이라고 하였다. 

  3. 스톤-캠벨운동은 처음부터 그 신학적 범위(scope)가 대단히 넓다. 지금은 환원운동이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인 스톤-캠벨운동이란 학명(學名)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운동이 역사 속에서 크게 초기교회환원(여기서 초기교회환원이란 사도적 전통회복)과 교회일치에 대한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결과 때문이다. 초기교회환원과 교회일치라는 개념은 엄밀하게 말해서 상호대립 혹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교회일치(예, 그리스도의 제자들)를 우선시하는 쪽에서는 초기교회환원이란 교회일치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하는 반면, 초기교회환원(예, 유/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우선시하는 쪽은 교회일치는 초기교회환원의 결과로 인식하려는 뉘앙스다. 1832년 1월 1일 렉싱턴(Lexington, KY)에서 발톤 스톤(1772-1844)의 ‘그리스도인들’(Christians)과 알렉산더 캠벨(1788-1866)의 ‘개혁자들’(Reformers)의 연합은 미국 스톤-캠벨운동사의 전환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초기교회환원과 교회일치 문제는 스톤-캠벨운동사에서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종종 충돌하였다. 그 결과, 짧은 스톤-캠벨운동사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 ‘그리스도인의 교회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들’로 분열하였다. 이 대사전 서론은 이런 세 지류들의 역사적 연합과 분열 그리고 재 연합의 과정을 “3세기에 걸친 스톤-캠벨역사의 조사와 분석”(pp. xxi-xxxv)이란 글에서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또한 대사전의 연대기 소제(小題)는 이 세 지류의 연합, 분열, 그리고 재 연합을 일목요연하게 표기하고 있다: (1) 쪽(xxxvi)에서 “스톤”과 “캠벨” (2) 쪽(xxxvii)에서는 “연합운동” (3) 쪽(xxxviii)에서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들”로 그리고 (4) 쪽(xxxix-xl)에서는 드디어 이 운동의 세 지류들인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들”로 분류하여 표기한다. 따라서 초기교회환원과 교회일치를 주창했던 스톤-캠벨운동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연합(일치), 분열, 그리고 재 연합과 같은 순환운동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사전의 총괄편집인들은 교회사에 면면히 흘렀던 사도적 전승의 교회회복에 대한 신학적 뿌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 대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신학교육과 선교사역에서 ‘개혁교회’와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일부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로 나타났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일부는 결과적으로 ‘국제 그리스도의 교회’(보스턴 운동)로 그 지평을 넓혔다. 하여 스톤-캠벨운동은 처음부터 그 성서적, 신학적, 교회적 범위가 매우 넓다. 그 이유는 뭘까? 첫째는 성서권위와 해석의 폭에서 그랬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선교회 문제(이는 후에 ‘열린 구성원제’로 나타난다)에서 그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전반적인 책무 방식에서 서로 달랐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한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매우 보수적인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신학적 경향이 진보적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운영위원회 참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82년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모였던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채택한 “세례, 성만찬, 교역”(영어의 첫 자를 따서 BEM이라고 약칭)인 리마문서작성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구성원들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역사적 예에서도 알렉산더 캠벨은 당대에 지적 영성가였지만, 단지 교회 지도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제임스 가필드, 1831-1881)의 친구였고 의회의원이었으며, 또한 사업가였고 사회개혁가였다. 그가 세운 ‘베다니대학’(1840)은 교회지도자만의 양성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가, 경영인, 사업가, 법률가, 학교교사, 과학자 등 거물의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그의 성서해석의 폭은 오늘날의 축자영감설과는 거리가 먼 포괄적 영감설자였다(오늘날 K. 바르트와 유사한 입장). 교회를 세상과 철저히 담 쌓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다. 이로 보건데 스톤-캠벨운동의 지평과 방향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들은 성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교회의, 교회를 위한 헌법으로 받아드렸고, 인간의 보편적 이성과 양심의 자유를 신뢰했던 지도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어 말씀을 걸어오셨다면 우리에게 주신 성서 또한 인간 누구나 보편적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 특수하게 예정되고 선택된 사람들만의 구세주가 아니라(칼빈의 예정론 거부), 누구라도 신앙과 양심으로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 곧 만인의 주님이시다. 이게 우리의 선구자들의 보편적 믿음이었다. 신앙과 이성은 인간이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본래적 도구이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스톤-캠벨운동은 정체된 신학, 교회체계가 아니라 성서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역사에 착근하여 앞으로 나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운동이다.  

  4. 대체로 스톤-캠벨운동의 4명의 선구자로 토마스 캠벨(1763-1854), 그 아들 알렉산더 캠벨, 발톤 W. 스톤, 그리고 월터 스코트(1796-1861)를 든다. 그러나 단연 알렉산더 캠벨과 발톤 스톤이 이 운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알렉산더 캠벨 기사(pp. 112-134)와 발톤 스톤의 기사(pp. 700-720)를 읽다보면 캠벨은 신약교회운동의 사상적 체계를 거의 확립한 선구자로 보이고 발톤 스톤은 거의 성자에 가까운 인물로 느껴진다. 알렉산더 캠벨보다 무려 16년이나 연상인 스톤의 인품이 캠벨의 사상적 체계의 우위를 더 압도한다. 노예해방전쟁(18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 있는 섬터 요새에 대해 남부연합 정부의 포가 발사됨으로써 전쟁이 시작) 이전에 스톤은 노예해방론자였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랑하는 가족(자녀들)도 홍수로 잃게 된다. 그는 노예를 해방하기 전에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농작기술을 가르쳐 독립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부터 180년 전의 일이다. 존 로저스(John Rogers)는 1847년 자신의 ‘부록과 회상’을 추가하여 스톤의 자서전을 출판하였는데, 그는 스톤이 “성인 같은 성품으로 인해서 그 운동권 내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기술한다. 로저스는 ‘남편’과 ‘아버지’의 표제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그는 그의 가족들 누구에게도 거칠거나 불친절하게 말하는 것을 결코 듣지 못하였고, 25년간 알고 지내는 동안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p. 701). 또한 “비록 그가 성서를 깊이 연구한 훌륭한 학자였고, 그의 박식과 깊은 신앙심과 덕망 있는 태도의 결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 자신의 장점을 알지 못하였고, 항상 물러나 있거나 겸손하게 가장 낮은 자리에 앉는 것 같았다.”(Ibid). 로저스는 스톤이 “그의 그리스도인 정신 때문에 심지어 그의 종교적인 적대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그의 훌륭한 도덕적 성품은 모두에 의해서 인정되었다”고 하였다. 스톤의 견해들에 반대했던 한 장로교 노파는, “나는 당신들이 스톤 씨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관심 없지만, 나는 당신들 누구 못지않게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다(Ibid). 그것은 스톤이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캠벨 또한 발톤 스톤이 삼위일체 논쟁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쟁(언뜻 스톤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듯한 표현을 한다)에 휘말릴 때 자신의 선명한 논리로 발톤 스톤을 구해준 우정의 선구자였다. 요한 계시록 20장의 그리스도의 천년통치에 대한 해석에서 대체로 발톤 스톤은 전천년설을, 알렉산더 캠벨은 후천년설을 주장하였지만 그들은 이 땅위의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상호 협력하였다. 그들의 우정은 단지 인간적 연대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대의(大義)에서 그랬다. 알렉산더 캠벨이 논쟁했던 장로교 목사(맥카라), 로마 가톨릭 사제(퍼셀) 등 수 많은 교회지도자들과의 토론은 유명하다(pp. 142-47). 한 마디로 몇 일 동안 계속해서 벌였던 그의 명석한 성서 지식과 토론 기술은 상대를 압도할 뿐 아니라 청중들을 불러 모았다. 
  스톤과 캠벨의 삶의 방식의 비교도 흥미롭다. 스톤은 평생 많은 식솔을 건사하면서 가난한 삶을 살았으면서도 형제나 나그네 접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알렉산더 캠벨은 수완이 좋아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사회적 인사들과 교류하며 교육에 힘썼다(예, 베다니 대학). 내 판단에 월터 스코트는 앞의 이들 두 사람의 선구자적 재능을 고루 갖춘 인물이다. 그는 스톤-캠벨운동이 침례교와 결별했을 때, 토마스, 알렉산더 캠벨 부자가 이끌던 개혁운동을 자립으로 나아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이끌었던 성공적인 전도자였다. 그는, 알렉산더 캠벨의 사위요 복음의 동료였던 로버트 리차드슨(1806-1876)과 더불어, 자신의 전천년설 주장을 빼고는 여러 면(스코틀랜드에서 이주와 학문 세계)에서 알렉산더 캠벨의 신약교회운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전승시켰던 인물이다. 스코트의 구원 받기 위한 ‘다섯 손가락 시연(試演)’은 당대 빈약한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과 성인들에게 쉽게 성서의 구원의 5단계(복음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세례 받아,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음)를 가르치는 재능을 보였다.  
  내 판단에 앞의 세 사람, 미국에서의 알렉산더 캠벨, 발톤 W. 스톤, 그리고 월터 스코트의 신약교회운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단연 토마스 캠벨이다. 그는 1809년 아들 알렉산더 캠벨과 더불어 신약성서교회의 회복에 의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운동의 창시자이다. 그의 이런 운동의 일치는 앞서 말한 1832년, 발톤 스톤의 추종자들과 함께 스톤-캠벨운동을 형성시킨 선구자이다. 몇 해 전에 나는 학습 차 애틀랜타(Atlanta) 피치트리에 소재한 ‘피치트리 그리스도인의 교회’(제자들 교회)에 한 달 반 동안 참석한 적이 있다. 본관 2층 복도 벽에 토마스 캠벨, 알렉산더 캠벨 그리고 발톤 스톤의 형상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토마스 캠벨은 그 ‘선언과 제언’ 문서로 유명하다. 성서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주창했던 그의 첫 번째 제언은 이렇다. “1. 이 땅위에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는 ‘그 본질에서, 그 의도(목적)에서, 그 헌법에서 하나’이다. 따라서 여기서 어떤 경우에나 분열은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몸(교회)의 파괴이며 ‘진저리나는 유해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결성한 지역 교회들(“회중들”)은 이러한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의 표현이며, 따라서, 서로 분리되어져서는 안 되고 같은 마음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p. 264).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 아들 알렉산더 캠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아버지 토마스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사표였다”고 술회한다. 때론 그의 동료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로버트 리차드슨은 방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회고』에서 캠벨 부자의 신약교회운동의 전후(스코틀랜드와 미국에서 활동)를 잘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캠벨 부자를 연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5. 『스톤-캠벨운동대사전』의 우리말 편찬에서 특히 내 기억에 남은 인물로는 안토니 L. 두나번트, 마샬 키블(1878-1968), 빌립스(Phillips) 가문, 러시아의 이반 프로카노프(Ivan Prokhanov, 1869-1933)가 있다. 이들 모두는 스톤-캠벨운동 확산에 자신의 지력, 복음열정, 재력, 그리고 순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분들이다. 키블은 테네시 내슈빌 출신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흑인 복음전도자였다. 뛰어난 설교와 겸손 그리고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동안 3만 명에게 침례를 주었으며 수십 개의 교회를 세우고 미국 전역에서 열정적인 전도 캠페인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 또한 아픔이 있었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자녀들이 그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교회 안팎의 인종주의자들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사회적 변화(인종차별)에 대한 침묵 때문에 그에 대한 비평이 없지는 않지만 그는 후덕한 백인 기업가(A. M Burton, 1879-1966) 그리스도인의 후원으로 수많은 곳에서 평생 복음을 전한 인물이다. 일전에 뉴욕의 박병수 선배님으로부터 자신도 그분을 뵌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그리운 것은 그와 같은 복음의 열정을 우리가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립스 가문과 그 부자(父子/토마스 1835-1912, 아들 벤자민 1885-1968)가 다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뛰어난 박애주의자며 재산기증자였다. 특히 아버지 토마스는 자신의 형제들과 더불어 서부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번 사람이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는 당대 미국에서 석유사업가 중 6번째의 재산가였다. 그는 신약교회운동가로서 익명으로 『평신도가 쓴 그리스도의 교회』란 책을 저술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4명과 함께 그 유명한 저널지 『그리스도인 표준』(1866년-)과 ‘표준출판사’(1872년)를 세운 사람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재력으로 고등교육기관(예, 필립스신학교, 빌립스대학교/그 이름을 기념하여 세운 학교)을 세웠다. 또한 많은 대학들(예, 히람대학, 베다니대학)에 오랫동안 많은 재정적 후원을 한 인물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는 테네시 내슈빌에 있는 고딕양식의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사학회’ 도서관 건물과 그 유지비용을 위한 재정기탁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대학교의 현실에서 신약교회를 추구했던 그런 평신도 재력가가 그립기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신약교회운동을 위한 아들 벤자민과 그의 두 번째 부인(Mildred Welshimer)의 박애정신(거대한 기부)은 더욱 빛난다. 
  이반 프로카노프는 당시 러시아 ‘복음기독교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그의 영향으로 수천 명의 신약교회 교우들을 낳았고, 그의 복음기독교운동은 당시 선교, 교육, 출판 사업을 활발하게 하였다. 이는 후에 미국의 스톤-캠벨운동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하여 미국의 교회들이 더욱 러시아에서의 신약교회운동을 지원하게 하였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1928년 러시아에서 약 600여명의 복음전도자들의 지도하에 약 2백만 명의 교우들을 두게 되었다. 그의 복음의 확신은 단순했다. “어떤 신조나 특정 신학체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신약성서에 기초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1세기의 사도적 전통의 교회를 지금 구현할 수 있으며 이는 미래에도 그대로 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그런 축복도 잠시, 스탈린(Stalin) 정권은 그와 그의 신약교회운동을 탄압하여 그들을 추방하였고, 600여명의 복음전도자와 장로들이 처형을 당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모든 러시아의 개신교들로 하여금 러시아 정교회에 귀속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이반 프로카노프의 신약교회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하여 처형을 당했던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과연 스톤-캠벨운동의 무엇이 어떤 영(靈)이 그들로 하여금 그 엄청난 핍박과 순교의 길로 내몰았는가? 묻는다.
  흥미로운 인물 하나가 더 있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그리스도의 교회들 중 한 선교사(J. Russell Morse의 증언)의 역할은 마오쩌뚱(모택통, 1893-1976)으로 하여금 중국의 모든 기독교의 교파 이름을 없애고 단지 기독교로 자문하였다는 사실이 이 대사전(p. 38)에 기술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이 대사전이나 2013년에 출판된 『스톤-캠벨운동: 세계사』에서도 한국선교에 대한 설명은 미진한 상태이다. 한 예로 이흥식 전도자님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아마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선교기록과 보고서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6. 19세기 초, 서구유럽과 미국에서 자유주의신학이 확산되던 시기에 스톤-캠벨운동은 어떻게 빠른 속도로 그런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난 그것을 그들이 품었던 4-5가지 확신과 활동으로 이해한다. (1) 당대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향한 긴박한 신앙 인식이다. 스톤-캠벨운동사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발톤 스톤의 전천년설과 알렉산더 캠벨의 후천년설이 상호 대립하였지만 그들은 긴박한 하나님 나라가 성서에 기초한 신약교회운동을 통해 실현된다고 믿었다. 특히 신대륙의 미국에서 그런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자신들이 헌신하는 신약교회운동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믿었다. 후론하겠지만 이를 위해 그들의 후예들은 (2) 복음전도학교를 세웠다. 특히 1920-60년대에 이런 학교설립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KCU(1959년) 설립도 그 한 모습이리라. 한 예로 1965년도 판 그리스도의 교회들 저널 중 하나인 「행동」(Action)에는 당시 전 세계(특히 한국과 남미)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형제, 자매 여러분! 1달러를 기부하여 한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가능합니다. 바로 남한입니다. 1달러를 기부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그 돈으로 한 영혼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의 「행동」의 신문에 난 기사다. 이 신문에 보면 1960년대 남한에는 8가정의 미국인 선교사들이 활동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남한에 투자된 기금이 27만 9불천이다(그 때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80불이었다). 그런 면에서 KCU도 사실 긴박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교두보로 세워졌던 것이다. (3) 개척지에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는 일이었다. 캐나다 선교의 일례를 보면 어느 지역에 선교하기 위해 몇몇 가정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평생 여러 직종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화 시켰다. 교회 세움이 하나님 나라 건설의 주 임무였던 것이다. (4) 선교사파송이다.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에 엄청난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아시아 선교사파송은 선교회 조직과 ‘열린 회원제’ 문제는 스톤-캠벨운동의 분열에 단초가 되기도 한다. 
  (5) 또한 그런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헌신했던 19세기 중반의 여러 저널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저널지 몇 개의 이름만을 거론하겠다(좀 더 자세한 내용은 2013년 6월에 가편집된 『스톤-캠벨운동대사전』주요주제 제본 참조):「복음주창자」, 「그리스도인 표준」,「확고한 터전」,「천년왕국의 선구자」,「환원계간지」,「그리스도인 침례자」. 이중 「확고한 터전」과「환원계간지」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위해 활발하게 간행되고 있다. 특히 「환원계간지」는 ACU의 ‘환원연구소’가 1년 4회 발간하는 매우 높은 수준의 학술저널이다(그리스도대학교 도서관에서 이 저널을 만날 수 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19세기 중반에 약 500여 개의 저널지가 있었고, 현재는 약 70개의 저널이 있다는 보고다. 앞의「복음주창자」지는 톨버트 패닝(Tolbert Fanning, 1810-1874)이 시작하여 후에 데이비드 립스콤(1831-1917)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그러나 보수적 입장에서 천명한 잡지로서 무려 112년 동안이 발행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저널이었다. 특히 톨버트 패닝은 초기에 발톤 스톤에 합류하여 내슈빌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다. 후에 그는 선교회 조직(예, 미국그리스도인선교회, ACMS)에 가장 강력히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신약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질서에 헌신하여 신약교회회복에 전 생애를 바쳤던 교회지도자였다. 또한 「천년왕국의 선구자」(1830)지는 알렉산더 캠벨의 사상이 다 담긴 저널이다. 알렉산더 캠벨은 이 저널 출간 이전에 「그리스도인 침례자」를 출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잡지가 교파 성을 띌 우려 때문에 그리고 보다 더 넓은 독자층을 겨냥하여 「천년왕국의 선구자」지를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인 표준」(1866)지는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는 저널이다. 앞의 이들 잡지의 편집자들은 당시 가히 스톤-캠벨운동에서 저널의 추기경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곧 이들 중요 편집자들의 성서적 신학적 입장이 그대로 당시 스톤-캠벨운동의 방향을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더 근거를 댄다면 미국의 민주주의제도와 남북전쟁은 스톤-캠벨운동의 사회적 정치적 지형을 형성해 주었다. 

  7. 눈에 뛴 그리스도의 제자들 활동: (1) 제자들신학원(Disciples Divinity House). 이는 1894년에 시카고대학교 내에 설치된 제자들 목회자 및 학자 양성기관이다. 그 설립자는 에드워드 S. 에임즈(1870-1958)인데 그는 당대에 예일, 시카고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학문을 추구한 그는 장래에 스톤-캠벨운동지도자들 또한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단지 성서신학뿐 아니라 존 로크(John Lock),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존 듀이(John Dewey)등의 저술을 소개함으로서 전반적인 인문사회교육(철학)을 신학교육의 기초로 삼았다. 하여 그는 향후 제자들 신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그는 철학을 도구 삼아 기독교 신앙을 더욱 정교하고 견고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신학교육에 성서고등비평, 경험철학, 실용주의를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서에 대한 알렉산더 캠벨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신조, 도그마, 및 교리보다는 성서의 권위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의 우위성을 주창해야 한다.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한 텍사스기독대학교 내의 ‘브라이트신학교’(Brite Divinity School, 1873) 또한 눈에 띈다. 이 기관은 두 명의 제자들 설교자인 애디슨(Addison)과 랜돌프 클락크(Randolph Clark)에 의해 세워졌다. 2003년 이후부터는 이 대사전의 총괄편집인중 한 분인 D. 뉘엘 윌리엄스가 학장직을 맡고 있다. 내가 이런 신학교육기관을 소개한 이유는 렉싱턴(Lexington) 신학교와 더불어 이들 학교가 미국 내의 제자들 교회의 신학, 선교, 교육을 스톤-캠벨운동사에서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모두 100년이 넘은 교육기관들이다. 특히 이 브라이트학교는 자신의 교육프로그램 내에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더 나아가 국제교육프로그램 일환으로 유대교, 한국학, 라틴학 뿐 아니라, 1997년 이후부터는 높은 수준의 목회신학, 목회상담학 과정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스톤-캠벨운동의 아시아 역사를 전공한 디모데 리(Timothy Lee) 박사 또한 여기서 공부하였다(디모데 리 박사는 이 대사전의 아시아 선교, 특히 한국과 일본 관련 글과 2013년에 출간된 『스톤-캠벨운동: 세계사』의 아시아 편을 다루었다). 1865년에 세워진 켄터키에 소재한 렉싱턴신학교는 스톤-캠벨운동사에서 가장 오래 된 신학교육기관이다. 따라서 신학교육과정에 자유주의신학 도입과 더불어 신학적 입장차이로 분열된 모습을 보인 대학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소재 ‘클레어몬트 신학교’ 또한 제자들 교회의 수준 높은 교육기관이다. 한 시대를 책임 맡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프리드하드만, 하딩, 립스콤, 에빌린대학교 등 고등교육관 소개는 잘 알려진 관계로 차후에 하겠다. 
  (2) 두 번째로 내가 제자들 교회의 활동에 주목했던 기관은 풍부한 기금을 확보한 ‘그리스도인의 교회 재단’(Christian Church Foundation, 1961-), ‘교회확장위원회’(Board of Church Extension, 1883-), 그리고 ‘그리스도인 재단’(Christian Foundation, 1922) 등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교회재단’은 처음엔 기금이 7,242.93불이었으나 2002년에는 목표치 2억 5천만불의 반절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확장위원회’ 또한 처음엔 500불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1억 3천만불에 이르렀다 한다. ‘그리스도인 재단’은 그동안 신약교회회복 사업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다가 1964년에 6백만불을 ‘크리스찬신학교’(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에기부하면서 해체되었다. 물론 이들 기관들은 헌신적인 기금을 제공한 수많은 사람들과 이런 재단을 바르게 운영한 집행부의 청지기로 인해 재산이 불어난 것이다. 우리 KCU의 교육재정을 염두 해 두어서 그런지 특별히 눈에 더 띄었다. 미국 내에 ‘아시아-태평양 제자들 협회’ 중 특히 한인 제자들 교회가 80여개나 세워진 것은 한편, 이런 풍부한 재정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8. 이 대사전을 통해 본 21세기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교육, 선교, 사회봉사 전망은 차후 기술해 보고자 하나, 몇 가지 과제만 나열하겠다. (1)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전통적인 가치, 신념의 전승과 갱신이 과제로 남는다(* 난 ACU 교수(L. 알렌)가 쓴 『오늘의 십자가 형 교회』가 훌륭한 안내를 하고 있다고 본다). 타 교단의 형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고유한 신앙과 신념을 재생 혹은 갱신하여 의미 있는 예배, 교육, 선교 프로그램을 선취할 필요가 있다. (2) 앞에서 소개한 ‘제자들신학원’이나 미국 여러 남부 주립대학들 내의 ‘그릭’(Greek)처럼 ‘크리스천 센터’ 활동을 통한 선교 전략이다(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예비 지도자들을 양성할 수 있다). 신학적 입장은 비록 다르나 그 방법론에서 시카고대학교 내의 ‘제자들신학원’은 한 모델이 될 수 있다. (3)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사회적 인식 변화와 유대 관계의 확장이다. 곧 교회의 외연 확장이 요구된다. 스톤-캠벨운동의 세 지류 모두 당대에 시의 적절한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여 기독교 진리의 실재를 확장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스톤-캠벨운동과 성장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사회적 변화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 빈부격차, 이주민 및 탈북민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20대 자살률 1위(자살이 20대 44.6% 원인), 나아가 용산 재개발 사태, 4대강 사업, 핵발전소 건설 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의 문화적 위임(책무)이 있는데도 우리는 눈 감고 있다. 최근에는 ACU 신학부의 포스터 박사가 쓴 『하나님 백성의 갱신』(서기대의 백종구 역)도 1960년대 미국 내의 인권문제,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소홀히 하여 기독교복음의 실재를 놓쳤다고 반성하고 있다. 끝으로 (4) KCU나 학교법인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 재단법인의 민주적 운영방식/제도 정착의 필요성이다. 본래부터 스톤-캠벨 운동의 저변에는 철저한 민주적 사고와 운영이 그 기초였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스톤-캠벨운동의 교회와 교육기관들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바탕에서 가능하였다. 하여 우리 학교법인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의 교회 유지재단에 더 이상 비민주적 독재와 같은 왜곡된 형태의 운영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결론: 
스톤-캠벨운동가들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들고, 교회 삶의 유일한 헌장으로 삼아, 자신의 삶 가운데서 당대의 분열된 교회를 일치시키고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려 했던 실천적 이상가들 이었다. 이 대사전을 번역, 출판한 이유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보하고 나아가 신약교회운동의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21세기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전망해 볼 요량이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것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탐구하면서 의견이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 사실, 이 대사전의 총괄편집인들이 토로하였듯이, 이 책은 스톤-캠벨운동사의 영광과 실패, 교회일치와 분열을 다 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며 처음에는 망설였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렇게 했다. 누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의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그것까지도 역사이기에 현재와 미래에 분명한 의미가 있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대사전에 담긴 신앙의 선조들의 역사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희망의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시기”(롬 15:13)를 기도하면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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