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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새로운 신학적 변화 조짐


정남수 교수

        본인은 겨울 방학(2008-2009)을 맞이하여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학의 새로운 변화를 드러내고 있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1) John Mark Hicks, Johnny Melton, & Bobby Valentine, A Gathered People: Revisioning the Assembly as Transforming Encounter⌜교회예배모임: 변화를 몰고 오는 집회⌟ (Abilene, Texas: Leafwood Press, 2007), 1-190;  2)  Gary Holloway & Douglas A. Foster, Renewing God's People: A Concise History of Churches of Christ ⌜하나님의 백성의 갱신: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약사略史⌟ (Abilene, Texas: ACU Press, 2006), 1-176이 그것이다. 우선 이 책들이 에빌린기독대학교에 속한 출판사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하라. 또한 책 제목만 보아도 "Revisioning(수정하는) . . ." 혹은 "Renewing(갱신하는) . . ."이 아닌가? 매우 정성드려 쓰여 진 책들이다.

        1) Dr. Hicks, Melton, & Valentine의 ⌜교회 예배 모임⌟은 예상했던 대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주일 예배 모임의 수정 혹은 새로운 이해를 주장하고 있다(이하 Dr. Hicks로 표기함). 특히 제 6장, "Gathered to God: Divine Presence in the Assembly(하나님에게 다가옴: 예배 모임에서 하나님의 현존) - 이 책의 핵심 내용인 듯하다. 거기서 Dr. Hicks는 주일 교회 예배 모임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핀다. (1) Gathered to worship the Father(성부 하나님에게 다가와 예배드림) - 성부 하나님을 예배함, 성령과 진리로 예배함; (2) Gathered in the name of Jesus(예수의 이름으로 다가와 예배드림) -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예수 안에서 성례전적 만남의 경험; (3)  Gathered in the Spirit(성령께로 다가옴) - 성령에 의한 중재, 선취적先取的 종말론적 집회가 그것이다. 잘 알다시피, Dr. Hicks의 신학 방법은 철저히 성경적이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석의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본적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 성경이 그 문제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특히 구약은 어떤 예증을 전하고 있는가? 복음서에서 예수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리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핀다. (나) 이후 그는 교회사에서 그 성경의 본문들이 해석되고 이해해 온 전력을 따라 잡는다. 특히 교부들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리고 중세와 종교개혁자들(루터, 칼빈, 쯔빙글리, 그리고 재침례파)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19세기 초 미국의 환원운동가들은 어떻게 해석했는가? (다) 이후 Dr. Hicks는 오늘날 대표적인 신학자들(예, K. Barth, W. Pannenberg, Bloesch, Grenz 등)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마지막으로 성경의 그 같은 본문이 우리의 교회 전통과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가를 석의한다. 따라서 그분의 신학방법은 Biblical, Historical, Theological(Existential), and Church practical approaches이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Dr. Hicks의 이 같은 해석 방법을 아주 건전한 방식으로 받아드리고 선호한다. 그분의 성경 접근은 교회 생활에 매우 유익하다. 그의 ⌜교회 예배 모임⌟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론: 교회 예배 모임은 "성례전적" 만남("Sacramental" Encounter)
        1. 잘못된 이분법(A False Dichotomy)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생활과 예배 모임.
        2. 이스라엘의 집회(모임)(Assemblies in Israel)
           하나님의 성산聖山으로 모임.
        3. 그리스도인의 집회(Christian Assemblies)
           복음의 말씀과 친교의 식탁(주의 만찬).
        4. 교회사에 나타난 집회(Assemblies in Christian History)
           교회예전禮典에서 말씀과 식탁.
        5.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집회(Assemblies in Churches of Christ)
           우리의 예배 모임의 역사의 형성.
        6. 하나님에게로 다가옴(Gathered to God)
           예배 모임에서 하나님의 현존.
        7.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예배 모임(Contemporary Gathered)
           복음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집회

        결론: 우리는 보다 진솔하게 우리의 신학적 문제를 논의하자!


        2) Dr. Holloway & Dr. Foster의 ⌜하나님의 백성의 갱신: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약사略史⌟의 책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는 책이지만 여기에는 저자들 자신과 그분들이 속한 대학(에빌린대학, 맆스콤대학) 그리고 이들을 후원하는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정직한 자기 고백이 담겨 있다. 특히 미국의 내전(남북 전쟁)에서 노예해방문제와 1960년대 불었던 흑인인권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자기반성이 이 책의 결론부분(제 13장 "도피처운동으로서의 미래에 직면"(Facing the Future as a Refugee Movement)에 잘 드러나 있다. 저자들은 맆스콤(테네시 내쉬빌 소재) 대학과 에빌린(텍사스 에비린 소재)대학의 신학부 교수들로서 아주 담대하게 오늘날(1967년 이후)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신학적 위기를 그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책의 곳곳에서 성경의 말씀의 종교적, 신앙적 차원의 회복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소홀히 다뤘던 사회적 이슈들을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서 재해석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불의, 기업의 착취, 여성들의 권익, 이민자들의 문화 충격, 세계 환경과 인권 문제에 이르기 까지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자신들이 처한 여건에서 힘닿은 데 까지 관심을 가지고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모든 문제들을 복음의 빛에서 접근한다. 전술한 것처럼 이 책은 매우 간략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약사이지만 어느 책 보다 솔직하고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쓰여 졌다. 이는 용기이다. 저자들은 특히 이 책을 대학의 학생들뿐 아니라, 교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심을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감히 공개적으로 자기들의 신학적 치부/어리석음(?)를 성도들과 함께 고심하면서 논의해 보려는 책들이 있는가? 그러나 이 책은 쉽게 말하면 성경구역공과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자도로서의 신앙의 갱신을 주문하고 있다. 본인은 이 책의 번역을 의뢰해 놓은 상태이다(ACU 출판사로부터 잠정적인 답변이 왔다). 본인 생각에 이 책은 독일의 한스 킹(H. Kung)의 <교회란 무엇인가>에서처럼 교회와 교회 역사를 본질적 차원과 역사 현실의 차원에서 동시에 논의하려는 책으로 보인다. 한스 킹은 자신의 책에서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차원(교회의 본질적 차원과 역사 현실의 차원)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신학자 J. 몰트만의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실존(삶)은 언제나 성경의 복음과 우리가 사는 역사 현실의 간의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 속에서 형성되지 않을까? 이는 우리에게 희망에 이르는 과정일까? 아니면 절망에 이를까? 저자들은 오늘날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학적 위기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자기의 문제를 솔직히 노출시킨다. 바로 여기엔 그 만큼의 담대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은 이들 저자들은 우리의 문제를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신앙의 선조들과 전통들을 여전히 존중하고 사랑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자신들의 신앙과 삶의 헌신을 스스로 다짐한다. 이것이 쌓여서 오늘날 미국의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훌륭한 기독교 대학들을 형성한 것이다. "참여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라는 명제가 깔려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헌신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교회 정신, 신앙을 이해할 수 없다.  지난 2009년 1월 20일(화) 미국의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대통령으로서 취임했다. 지금 미국뿐 아니라 세계는 그에게서 비전을 보고 있다. 그것은 밑으로부터 그리고 다문화를 아우르는 민주와 자유, 그리고 평화의 번영의 국가 건설이다. 기대된다. 나는 이 작은 책에서 저자들이 담대히 자기 고백하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희망을 본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성경의 말씀에 일치하여 교회 예배와 구조 그리고 운영상의 회복을 말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형성되는 이 역사 현실의 정직한 자세를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신앙의 선조들은 당대에 자기가 처한 역사 현실에서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던 진리에 천착하여 최선의 최상의 노력을 기울려 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때론 휴대에 와서 곡해되기는 했어도 그들은 복음에 정직하고 충실했다. 일예로 남북 전쟁이 발생하던 시기에 환원운동가들은 자신들의 노예들은 해방하고 그들을 양자로 삼아서 신앙으로 키웠고 받아드렸다(예, D. 맆스콤). 그러나 당대 그들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 남부의 정치적 사회적 흐름과 함께 노예 해방 문제를 더 깊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맆스콤은 "흑인을 형제로 받아 드리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지 않은 것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당시에 이런 주장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들은 신앙의 선조들이 지녔던 이런 주장을 꺼냄으로서 우리의 담대한 생각과 행동들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진화된 사회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가?
        또한 이 책의 두드려진 특징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역사를 상당히 과학적으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기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대구분이다. 대체로 전쟁이나, 왕들의 칙령이나 종교회의에 의해 역사를 구분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매우 자의적이다. 문화 신학자 P. 틸리히(Tillich)는 역사의 참여자 혹은 담지자가 아니고는 아예 역사 기술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2차 대전에서 히틀러에게 항거해 보지도 않은 역사가가 현대사를 기술한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난센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자는 철저히 역사 참여자들이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모두 역사의 담지자들이었다. 폐쇄된 공간에 머물러 묵상한 종교인들이 아니었다.  영국의 오스왈드 스펭글러(O. Spengler)는 "역사를 자연의 사계四季"의 특징으로 기술하였다. 문화사를 생명의 흥망성쇠 식으로 곧 자연의 변화 혹은 유기체의 씨앗의 발아, 자람, 꽃핌, 열매 맺음의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모든 문화 혹은 역사는 이 과정을 거친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고 인간의 생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상당히 공감이 간다. F. 헤겔은 그의 <역사철학>에서 동양(중국의 황하문명, 인도)의 역사로부터 서양(기독교)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기술했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역사는 절대정신의 전개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동양을 깔보는 시각이 역역하다. 함석헌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난 속에 깃든 씨알(의미, 구속사)을 주장한다. 역사는 그 자체로 그런 씨앗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깨우침이다. 기독교의 복음이 이것이 아닌가?  인간의 문화사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특정하게 시대구분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저자들은 마치 한국 사람들의 세대 구분 방식처럼 대체로 30년 혹은 40년을 기준으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사를 구분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들여가 보면 저자들은 그런 시대구분이 아니라 환원운동의 역사를 생명 현상으로 파악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스펭글러처럼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사계四季를 말하는 듯하다.
        바톤 스톤과 알렉산더 캠벨의 서로 다른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전 생애를 다 헌신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그들은 지녔다. 물론 캠벨은 이것이 하나님에 의한 미국의 건설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했다. 한 사람(켐벨)은 침례를 형제와 자매와의 친교의 중요한 기준으로 파악한 반면, 다른 한 사람(스톤)은 그것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와 형제들의 도모를 목표로 했다. 한 사람은 당시에 아주 높은 수준의 대학교육을 받은 지도자라면 다른 한 사람(바톤 스톤)은 겨우 글을 깨치고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기본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한 사람은 아주 이성적이어서 너무 차가운 반면, 한 사람은 아주 마음이 따사로운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봉하고 논리를 편 사람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부인하는 듯 했다(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확실하나, 신적 본질에 어떻게 하나님과 동일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캠벰과 스톤은 그들의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함께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교회 일치,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노력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형성시켜 준 아름다운 유산이다. 축복이다. 머리(캠벨)와 가슴(스톤)을 두 중요 선조로 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신앙의 유산을 형성했다. 그래서 역사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아주 중요하다. 이는 오직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를 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론: 정체성正體性을 위한 역사 인식의 필요성
        1. 우리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제 1부: 1804-1832 환원운동
        2. 초기 미국에서 환원운동의 약속
        3. 바톤 스톤(Barton Stone)과 그리스도인의 일치
        4. 캠벨(Campbells) 부자父子의 미국에 상륙
        5. 스톤과 캠벰 운동(환원운동)

        제 2부: 1832-1861(스톤과 캠벨) 교회일치의 발전
        6. 스톤과 캠벨 운동의 성장
        7. 이 운동의 신학적 발전

        제 3부: 1861-1906 불일치와 분열
        8. 남북전쟁으로 인한 스톤과 캠벨 운동의 대분열
        9. 당시의 신학적 이슈와 논쟁의 글들(편집)

        제 4부: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정체성 형성
        10. 1906-1941: 서로 색깔 나는(뚜렷한) 교회의 형성

        제 5부: 교회 성장과 영향력
        11. 1941-1967: 주류 교회의 형성  

        제 6부: 다양성, 침체,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
        12. 1967-현재: 정체성의 위기

결론: 도피처운동으로서의 미래를 맞이함
그룹 연구
주요 사진
형제/ 자매들의 활발한 토론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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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Douglas 2009.06.04 16:01
    정남수 교수님 참 오랜만입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김덕호 목사입니다. 96학번 교회행정학과 학생이었던...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네요. 모쪼록 건강하시고 귀한 사역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 ?
    Chilbo 2009.06.04 19:55
    오랜 만 입니다. 나는 "김덕호 목사"하면 당시 잘 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납니다. 학교를 바라보는 입장은 달랐어도 학구적이고 성실하고 한편 마음이 따스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답글도 주니 고맙소. 혹 서울에 오면 연락주세요.오늘도 주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 . . . 빕니다.
  • ?
    Samwater 2009.06.06 14:37
    반갑습니다. 좋은 의견도 좋은 책도 나오기를 바랍니다. 상세한 글은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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